[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2025년 봄, SK이노베이션 안팎의 공기는 무거웠다. 정유·화학 업황 둔화와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누적 손실, 커진 차입 부담이 동시에 SK이노베이션 내부 분위기를 압박했다. 정유사업은 여전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지만 시장은 더 이상 ‘기름의 시대’가 과거처럼 이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실적은 경고등을 켰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 매출 80조2960억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순손실은 5조4364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도 4486억원에 머물렀다. 외형은 유지했지만 수익 체력은 약해졌고, 사업 구조를 다시 짜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시점인 지난해 5월 28일 추형욱 사장이 SK이노베이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1974년생인 추 대표는 SK E&S 대표 시절 저탄소 LNG와 재생에너지, 수소 사업을 이끌며 에너지 전환 사업 경험을 쌓아왔다.
그가 취임 후 가장 먼저 꺼낸 화두는 ‘전기화(Electrification)’였다. 석유 중심 기업에서 전력과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시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배터리 사업 부진과 대규모 투자 부담, 복잡한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전기화 전략은 적잖은 위험을 안은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1년 뒤 숫자는 달라졌다. SK이노베이션의 2026년 1분기 매출은 24조21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4% 증가했다. 변화는 수익성에서 더 뚜렷했다. 지난해 1분기 446억원 영업손실을 냈던 회사는 올해 1분기 2조1621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섰다. 당기순이익도 1256억원 손실에서 8960억원 흑자로 전환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정유 업황 반등만으로 보지 않는다. 추 대표 취임 이후 추진된 운영개선(OI)과 사업 재편, SK E&S와의 결합 효과가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추 대표 전략의 중심에는 ‘전기화’가 있다. 원유 가격과 중동 변수에 크게 흔들리는 전통 정유 구조에서 벗어나 LNG·발전·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ESS)·AI 전력 인프라를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SK E&S와 합병하며 정유·배터리 사업에 LNG 밸류체인과 발전사업을 더했다. 몸집을 키우는 인수합병보다 에너지 포트폴리오의 축을 바꾸는 작업에 가까웠다. 사업 구조를 보면 변화의 이유는 더 선명해진다. 지난해 매출 가운데 정유사업 비중은 58.8%였다. 화학은 11.1%, 배터리 8.7%, E&S는 14.8%였다. 여전히 석유사업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중동 정세 불안과 공급망 리스크도 변화를 재촉했다. 원유 수입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정제사업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추 대표는 LNG를 가장 현실적인 연결고리로 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연간 600만톤 규모 LNG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 성과로 올해부터 20년간 연 130만톤 LNG를 국내로 들여올 수 있게 됐고, 베트남에서는 뀐랍 LNG 발전 사업 기반도 마련했다.
AI 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도 새로운 기회가 됐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향후 4년간 3억3800만달러를 투자해 SK하이닉스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AI 사업 재편에 참여하기로 했다. 북미 AI 전력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사업을 겨냥한 포석이다. 소형모듈원전(SMR) 투자 역시 같은 그림 안에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와 함께 미국 테라파워에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라 있으며 최근 미국 와이오밍 상업용 원전 건설 승인까지 확보했다.
최근 장용호 총괄사장을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하며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한 것도 변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장 대표가 포트폴리오 재편과 재무 안정화를 맡는다면, 추 대표는 전기화 전략과 미래사업을 책임진다. 물론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SK온의 안정적 수익 기반 확보와 차입 부담 완화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전기화 전략 역시 대규모 투자와 긴 회수 기간을 고려하면 결국 실행력이 성패를 가른다.
그럼에도 임기 반환점을 맞은 추형욱 대표의 성적표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적자에 머물던 SK이노베이션이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사업 구조 전환을 통해 생존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흑자전환은 추형욱 체제가 ‘버티기’가 아니라 '구조 전환'에 승부수를 던진 뒤 얻어낸 첫 성적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