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앞에 놓인 풍경이 달라졌다. 그동안 그의 이름을 설명하던 단어는 수출과 생산, 해외 사업 확대였다. K-방산 수출을 이끈 전문경영인, 성장의 설계자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그러나 대전사업장 폭발 사고 이후 손 대표를 향한 질문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성장의 속도를 이끌었던 경영자가 이제는 안전과 신뢰 회복이라는 더 무거운 책임을 경영 전면에서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는 지난 1일 오전 폭발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사고는 로켓 발사체 추진제 관련 세척 공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원인은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 조사를 통해 규명될 예정이다. 대전사업장은 2018년과 2019년에도 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세 번째 중대 사고가 이어지면서 현장 안전관리 체계 전반이 다시 조사선상에 올랐다.
손 대표는 사고 직후 현장에 대책본부를 꾸리고 수습에 들어갔다. 그는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유가족 곁에서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다하고 부상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는 보다 무거운 표현이 이어졌다. 손 대표는 “이번 사고는 안전에 있어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엄중한 교훈을 줬다”며 “형식적인 대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회사 안전 시스템을 원점부터 다시 살펴보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그의 메시지에는 애도와 수습, 재발 방지가 반복됐다. 숨진 직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애도를 전하면서 임직원들에게도 동료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사고 수습에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작업장을 만들기 위해 전사적인 안전 개선 활동에 힘을 모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손 대표는 한화그룹 안에서 방산 사업을 오래 맡아온 전문경영인이다. 1965년 대구 출생으로 영진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한화그룹 입사 이후 경영관리와 전략기획 부문에서 경험을 쌓았고, 한화지상방산과 한화디펜스 대표를 거치며 지상 방산과 해외 사업을 맡았다. 2022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에 오른 뒤에는 항공엔진과 우주, 방산 사업 전반을 총괄했고 2024년부터는 한화시스템 대표도 겸하고 있다.
손 대표를 성장의 설계자로 만든 힘은 기술보다 실행에 있었다. 공학도 출신이 아닌 경영학 전공 최고경영자(CEO)였던 그는 조직 운영과 사업 전략을 앞세워 방산 수출 확대를 밀어붙였다. 폴란드 수출과 해외 생산 거점 확대, 항공우주·방산 계열 재편 과정마다 그의 역할은 구상보다 실행과 조율에 가까웠다.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 차원의 투자와 미래 전략을 맡는다면 손 대표는 사업 운영과 현장을 움직이는 실무형 경영자로 자리해왔다.
성과도 숫자로 드러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5조751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6388억원으로 13.9%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5262억원으로 151.4% 급증했다. 방산 수출 확대와 고부가 사업 비중 상승이 맞물리며 실적 체력도 한층 두터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성장 흐름 속에서 손 대표 이름 뒤에는 자연스럽게 ‘성장의 설계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성장의 속도와 안전의 무게가 과연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왔는지 다시 따져보게 한다. 방산 산업은 고체연료와 화약, 추진체 같은 고위험 물질을 다룬다. 공정 하나의 오류와 설비 이상이 곧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에도 사고가 있었던 대전사업장에서 다시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예방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작동했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게 한다.
한화그룹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던 직원들이 숨지고 다쳤다는 소식에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며 유가족 지원과 부상자 치료를 신속히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그룹은 여승주 부회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대응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이제 손 대표 앞에 놓인 과제는 분명하다. 사고 원인을 투명하게 밝히고 유가족과 부상자 지원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동시에 대전사업장뿐 아니라 고위험 공정 전반의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무인화와 자동화, 방폭 설비, 위험성 평가, 현장 교육까지 실제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안전 경영 선언은 현장을 움직이기 어렵다.
손재일 대표는 그동안 성장과 수출 성과로 평가받아온 CEO였다. 그러나 이번 사고 이후 시장과 현장이 바라보는 기준은 달라졌다. 성장의 설계자로 불렸던 손 대표가 이제는 안전의 설계자로도 기억될 수 있을지, 그의 리더십은 가장 무거운 질문 앞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