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금융사간 경쟁의 기준이 ‘상품’에서 ‘역할’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예금과 대출, 자산관리 상품 판매 규모가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었다면, 최근에는 금융사가 시장에서 ESG나 DX, 포용금융 등이 더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이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의 기업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상위 10%에 포함된 것은 단순한 점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해당 평가는 재무 지표와 함께 기후 대응, 인적자원 관리, 포용금융 등 기업 운영 전반을 함께 살펴본다. 특정 항목의 성과보다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반영된다. 우리금융의 경우 기후 리스크 관리와 취약계층 대상 금융 서비스가 사업 전반과 연결된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IBK기업은행도 비슷한 흐름 속에 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정책금융 기능과 ESG를 결합한 구조가 비교적 일찍 자리 잡았고, 이를 바탕으로 녹색금융과 사회적 채권 발행, ESG 컨설팅까지 범위를 넓혀왔다.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기업의 전환 과정에 일정 부분 관여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사가 산업 변화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그 일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한은행이 발달장애인 연주자로 구성된 음악단을 운영하는 사례는 기존 금융권의 고용 방식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단순히 채용 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직무 자체를 새롭게 구성하고 교육과 활동 기회를 함께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금융회사의 사회적 역할이 선언적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운영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KB국민은행이 중소기업 ERP 시스템과 금융 서비스를 연결한 시도는 그 흐름을 보여준다. 기업의 회계와 자금 흐름이 관리되는 시스템 안에서 금융 기능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편의성 개선을 넘어 데이터 기반 금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재무제표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실제 거래 데이터를 반영하는 방식이 확대되면서, 금융 접근성이 낮았던 중소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은행은 상속과 유류분 제도 개정에 맞춰 관련 세미나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투자와 절세 중심이던 자산관리 서비스가 법률과 승계 설계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산 이전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사들이 세무·법률 전문가와 협업해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다.
부산은행은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연금은 안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영역인 만큼, 상품 구성과 운용 방식이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ETF를 활용한 포트폴리오와 모바일 기반 관리 기능이 결합되면서 고객이 직접 자산 흐름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플랫폼 경쟁이 두드러진다. 삼성화재가 모바일 플랫폼 토스에 전용 공간을 마련한 것은 접근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별도의 채널로 이동하지 않고도 상품을 비교하고 가입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금융 서비스가 특정 창구가 아니라 일상적인 플랫폼 안에서 소비되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교보생명은 금융사의 역할을 교육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 교육은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 중심으로 구성됐다. 생산 공정과 시장 분석, 고객 응대 등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내용이 포함된다. 금융회사가 단순 서비스 제공을 넘어 고객 기업의 운영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과 자산운용 업계도 상품 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증권은 ISA 만기 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투자 기간을 늘리는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세제 혜택과 복리 효과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단기 성과보다 장기 구조가 중요해지는 흐름을 반영한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500액티브’는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대표 지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핵심 종목 중심의 압축 투자와 시장 상황에 따른 비중 조정이 결합되며, 지수 추종과 개별 투자 사이의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변동성이 커진 시장 환경에서 유연한 대응 전략에 대한 수요가 반영된 흐름으로 해석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우주테크 ETF’는 상장 이후 개인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며 규모를 키웠다. 민간 우주 기업 중심으로 구성하고 상위 종목 비중을 높인 구조가 특징이다. 산업 특성상 소수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점을 반영한 전략으로, 분산보다 핵심 기업 중심 투자에 대한 수요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사의 경쟁력은 어떤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지보다, 어떤 방식으로 고객과 연결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같은 변화가 일시적인 흐름에 그칠지, 금융 산업 전반의 기준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