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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 의거 94주년 기념식…독립운동 불씨 살린 ‘성공한 의거’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서 기념식, 보훈 인사·시민 150여 명 참석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 일왕 향한 의거로 임정과 독립운동에 전환점
선양사업 지속 강조…“이봉창 의거, 실패 아닌 성공으로 기억해야”

[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이봉창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의거 제94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사단법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으며, 서울지방보훈청장과 광복회 관계자, 일반 시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기념식사와 기념사,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이봉창 의사는 1901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의 중심 무대에 섰다. 그는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합류해 약 1년간 거사를 준비한 뒤,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환궁하던 일본 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같은 해 9월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비록 거사는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지만,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 의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침체돼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선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이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외교적 파급 효과도 컸다.

 

이봉창 의사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나,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은 아직 추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기념사업회 측은 그의 역사적 의미에 걸맞은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이봉창 의사 선양사업에는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오랜 관심과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기념사업회를 재건해 회장을 맡았으며, 김구재단 설립과 독립유공자 지원 활동 등을 통해 독립운동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하는 데 힘써왔다. 빙그레가 전개해온 독립운동 관련 캠페인 역시 이러한 진정성이 반영된 사례로 평가된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기념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봉창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사와 존경의 의미가 확산되었으면 한다”며 “특히 이 의사의 의거는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성공한 의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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