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휴가철은 많은 이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 시기를 편히 즐기지는 못한다. 특히 ‘자율신경실조증’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리듬이 흐트러지는 이 시기가 오히려 증상의 악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율신경실조증은 신체 각 기관의 기능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가 불균형해지며 발생하는 복합적인 증후군으로 두통이나 어지러움, 가슴답답함,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이 동반된다.
이는 명확한 기질적 병변 없이 신체적·정신적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공황장애, 강박장애, 불안장애, 우울증과 같은 신경정신과 질환들과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휴식을 해도 회복되지 않고, 쉬는 것 자체가 오히려 불안하거나 더 피곤해지는 사람이라면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구성된다. 교감신경은 긴장·각성 상태를 담당하고, 부교감신경은 이완·회복을 담당한다. 자율신경실조증은 이 두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지며 생기는 증후군으로 분류된다.
특징적으로 불면증과 편두통, 진전증, 위장장애(소화불량, 과민성장증후군) 등이 나타나며 이는 뇌신경질환 또는 정신질환과 혼동되기도 한다. 자율신경실조증은 특정 질환으로 분류되기보다는 공황장애, 사회공포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전환장애 등의 발현 메커니즘과 중첩되는 점이 많다. 특히 휴가철에는 수면 패턴의 붕괴, 활동량의 급격한 변화, 낯선 환경과의 접촉 등으로 자율신경계가 예민해지며 증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자율신경실조증을 기허, 기울, 담울 등으로 해석한다. 감정적 스트레스나 과로로 인해 간의 기운이 울체되면, 심장과 비장의 기운까지 손상되어 전신에 기혈순환이 막히게 되고, 이는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불안을 동시에 유발한다.
특히 더운 계절에 땀을 많이 흘리고 음양의 조화가 깨지면, 한열(寒熱)의 균형이 무너지고 불면증, 가슴답답함, 안구피로, 목어깨통증 등 다양한 자율신경장애 증상으로 연결된다. 이때 전신의 혈류순환을 원활히 하고, 간의 울체된 기를 풀어주는 한약 치료가 병의 핵심을 다루는 치료법이 된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자율신경실조증을 단일 질환이 아닌 ‘다기관 증후군’ 또는 기능적 신체증후군(FSS)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뇌의 감정 조절 회로,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 axis), 장-뇌 축(gut-brain axis) 등과의 연관성도 주목받는다. 또한 심박변이도(HRV) 측정을 통한 자율신경계 평가, 기능의학적 마이크로바이옴 분석, 생체리듬 기반 인터벤션 등 정밀의료 방식도 도입되고 있다. 특히 강박증, 우울증, 만성불안 등과 같이 장기화된 신경정신과 질환의 저변에 자율신경 기능 이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연구들도 증가하고 있다.
한편 한의학적 접근에서는 담적병, 비위기허, 간울기체 등의 변증으로 설명되는 복합 증상군에 대해, 심신 통합적인 한약 처방과 이침, 약침, 추나 등의 물리적 자극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치료모델이 다수의 임상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심리치료와 HRV 훈련, 명상기반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BSR) 등도 병행치료로 권장되며, 특히 불면증과 우울증이 주요 동반 증상일 경우 인지행동치료(CBT)가 중요한 치료 옵션이 된다.
휴가철 증상 악화를 피하려면 먼저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과도한 외출과 체력 소모를 피하는 것이 좋다. 햇볕을 적당히 쬐고, 조깅이나 산책 등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하면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회복되는 데 도움을 준다. 카페인, 알코올, 흡연은 자율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하므로 삼가는 것이 좋으며,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의 사용도 자제하여 눈의 피로와 안구 피로감으로부터 뇌를 보호해야 한다.
자율신경실조증은 단순한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신체와 마음의 경고음이다. 휴가철이라고 해서 무조건 쉬기보다, 내 몸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리듬에서 안정감을 찾는지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두통이 잦고, 어지럽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되지 않으며, 밤마다 잠들기 어렵다면 단순 피로나 ‘마음의 문제’로 넘기지 말고, 자율신경계의 균형부터 점검해보자. 쉼조차 피로하게 만드는 이 병의 회복은, 내 안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창원 휴한의원 김한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