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삼성이 지난 12년간 이어온 ‘미래기술육성사업’의 성과를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하며, 민간 주도의 기초과학 연구 지원이 한국 과학기술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보여줬다. 이 사업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비전을 내다보는 ‘기술 중심 사회공헌’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사업은, 이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성장 기반을 넘어 미래 산업의 토대를 다지는 핵심 축으로 발전하고 있다.
7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미래기술육성사업 2025 애뉴얼 포럼’은 삼성이 지난 2013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한 행사다. ‘기초과학의 깊이, 응용연구의 확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는 학계·산업계 연구진 400여명이 참석해 지난 12년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미래 기술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삼성은 그간 총 1조50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880개 연구과제를 지원하고, 누적 연구비 1조1,419억 원을 집행했다. 91개 기관, 1만6천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교수뿐 아니라 대학원생 1만4000여명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험장비와 재료비를 지원받았다. 단순한 연구비 지원을 넘어, 과제 선정부터 기술 사업화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육성 패키지를 도입해 연구자의 자율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보장한 점이 특징이다.
박승희 삼성전자 CR담당 사장은 이날 “삼성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기초과학 생태계를 확장하고 젊은 과학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며 “지금은 기술이 곧 패권이 되는 시대, 미래의 핵심 키워드는 과학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도 “기초·소재·ICT 분야의 창의적 연구과제를 발굴·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 환경 속에서 창의성과 혁신은 연구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올해 포럼에서 학계와 공동으로 ‘10대 유망기술’을 선정·발표했다.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스마트 열관리 솔루션 ▲대체 에너지 ▲AI 기반 배터리 ▲디지털 헬스케어 ▲AI 바이오 치료제 ▲바이오 컴퓨팅 ▲차세대 컴퓨팅 아키텍처 ▲휴머노이드 로봇 ▲포스트 휴먼 신체·인지 증강 기술 등으로, 향후 10년간 글로벌 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할 기술들이 망라됐다.
이들 기술은 삼성의 주요 계열사 전략과 맞물려 있다. 예컨대 AI 배터리와 스마트 열관리 솔루션은 삼성SDI의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및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연계되고,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 컴퓨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래 사업 방향과 일치한다. 이날 포럼의 하이라이트는 삼성의 지원을 받아 성과를 낸 대표 연구자들의 발표였다. 전명원 경희대 교수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분석해 “초기 은하가 기존 표준 우주론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는 새로운 과학 데이터를 제시했다.
김재경 KAIST 교수는 인체의 24시간 주기 리듬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해 ‘AI 수면코치’ 기술을 개발했으며, 이는 ‘갤럭시 워치8’에 탑재됐다. 조용철 DGIST 교수는 마비 환자의 신경 재생 연구를 지속하며 “감각 회복과 운동 기능 복원”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김장우 서울대 교수는 AI 서버 병목을 해결하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 이를 기반으로 창업한 ‘망고부스트’가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 중이다.
창업 성과도 주목받았다. 서울대 윤태영 교수가 2014년부터 5년간 지원을 받아 설립한 ‘프로티나’는 항체 신약을 빠르게 찾는 ‘고속 항체 스크리닝’ 플랫폼을 개발, 지난 7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상업화 불확실성이 높더라도 미래 기술의 가능성에 과감히 투자한 결과다. 프로티나는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서울대 연구진과 함께 AI 기반 신약개발 국책과제 주관기관으로도 선정됐다.
삼성은 올해 처음으로 ‘미래과학기술 포럼’을 별도 신설해 기초과학과 공학 분야 50개 과제, AI 및 융복합 분야 14개 특별세션 등 총 64개 발표 세션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과 학계 전문가들이 함께 선정한 ‘10대 유망기술’과 ‘기초과학 분야 AI 활용’ 주제에 대한 심층 토론이 이어졌다. 강찬희 서울대 교수는 노화 전이를 유도하는 세포 분비 물질을 규명한 연구를, 신원재 고려대 교수는 저궤도 위성통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을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김성근 포스텍 총장은 “삼성의 미래기술육성사업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자 발굴에 큰 역할을 해왔다”며 “이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기술의 언어로 실천한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승희 사장은 “과학자가 자유롭게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의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도전적 연구를 멈추지 않는 연구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저변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포럼에는 권칠승·안철수·김선민·이주영 등 여야 국회의원도 참석해 과학기술계의 도전을 격려했다. 삼성의 미래기술육성사업은 ‘기초과학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철학 아래, 한국 과학기술의 장기적 성장을 이끄는 민간 중심의 혁신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12년 전 ‘기술 중심 사회공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이제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의 실험장’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든든한 토양으로 진화하고 있다.















